관동대학살 간토대학살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기를.. 관동대지진 간토대지진

2017. 7. 3. 16:34한 발 자국 스텝 업♬




1923년 9월 1일

일제 강점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도쿄를 중심으로 관동 지역에 진도 7.9급의

엄청난 위력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점심 시간이라 거의 모든 가정에서 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지진은 곧 대형 화재로 이어졌고

관동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지진을 관동대지진이라 부르며

역사상 가장 큰 재해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은

사망자, 행방불명자 14만명

이재민 340만 명 등 인적, 금전적 손해도 굉장히 컸습니다.

당시 일본은 사회주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한국과 중국의 독립운동이 격화되기 시작했고

국내 공황으로 인해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이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던 걸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던 일본 정부와 군부는 이 대지진을 이용해

기회라고 생각하고 민중의 보수적 감정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남대문역 사건'으로 독립 운동에 공포심을 갖게된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 錬太郎)'

동경과 카나가와현의 각 경찰서와 경비대에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보고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문은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근거없는

낭설로 점점 확대되면서 학살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동아일보사




이렇게 선포된 계엄령은 동경과 인접 군에만 선포되었으나

점차 카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지바현에도 확대되면서

대학살의 참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군대와 경찰이 중심이 되어 행해진 대학살은

점차 자경단과 일반인들도 동참하면서 광기어린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죽창, 일본도, 곤봉, 철봉 등을 들고 도망치는 한국인들을

붙잡아 무차별 학살하면서 어린 아이와 노인,

더구나 경찰서로 도망친 조선인까지 쫓아가 살해하였습니다.






영화 <박열>에서도 나오던 장면입니다.

아무나 붙잡고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쥬고엔 고쥬센'을 읽어보라고 한 후

발음이 이상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즉시 살해하였습니다.

그 대상은 어린 아이, 여성, 노인을 불문하고 행해졌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인이나 류큐인들도 살해당했습니다.

이런 무차별 학살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조선인들은 무려 6천여 명에 육박하며

일본의 주장으로는 2,700 여 명이라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이 학살을 방조하면서

국제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 언론도 통제하기에 이릅니다.

10월 보도 금지를 해제했지만 군대나 관공서의 학살은 모두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자경단으로 돌리는데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형식상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 왜곡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죠.






앞서 올린 영화 <박열>에서 다뤄진 사건이 바로 이 관동대지진과 관동대학살인데요.

이번 영화로 인해 관동대학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뜻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